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다.
ㅡ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산다는 것은
원래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매일같이 새로움을 맛본다.
다시 말해 어제를 산 내가 아침이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일기는 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
날마다 기록되는 이 독백은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영원과 내면의 대화, 신과의 대화다.
이것은 나를 고쳐주고,
우리를 혼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일기는 자기(磁氣)처럼
우리에게 평형을 되찾게 한다.
일종의 의식적인 수면이고 잠재된 행동이다.
의욕도, 긴장도 모두 멈추고
우주적인 질서 속에서 평화를 갈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한의 껍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다.
" 1872년 1월 28일(51세)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
우리 자신을 지키는 두 개의 날개가 있다.
하나는 단순함(Simplicity)고
하나는 순수함(Purity)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는 인생이다.
짓는대로 읽히고,
감흥과 의식이 맺어져서 서로 돕고,
스스로 작은 우주임을 알고,
우주적이고 신적인 시의 작은 후렴을
신 앞에서 연주한다.'
"(1821~1881)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호기심 때문에,
혹은 우리의 기분전환을 위해
명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색은 취미와 같은 소모품이 아니다.
사색은 우리의 힘과
존엄성을 기르는 유일한 수단이다.
"1872년 12월1일(51세)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삶을 향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결단은 인간에게
좀더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안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생명 이상의 것으로
화원 시켰음을 뜻하며
인간의 본래적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섬을 의미한다.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이란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
인생은 짧다.
우리의 일생을 다 바쳐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우리의 내면이 기분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날마다 규칙적인 정신 수양이 필요하다.
정신은 날씨와 같다.
구름이 모이면 비가 되듯
번뇌가 모이면 고통이 뒤따른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습관은
격언 이상으로 중요한 몫을 한다.
인생은 습관이라는 직물을 짜는
작업을 하는 것임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과 함께할 수 없었던 이 생애는
종말에 이르러서도 후회뿐이다.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 소멸하더라도
나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행복을 베풀고 선을 행해야 한다.
나는 나를 이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만 우정을 요구 해왔다.
지식을 소중히 여길 것 같은
사람에게만 대화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을 나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삼자가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이웃의 속내를 이해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실이다.
"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는 늘 홀로 서 있다.
그리고 그 거친 들판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의 발걸음은 누구에게도 해독되지 않는다.
인생의 절정은 이 슬픈 드라마의 독백에 있다.
신과 우리의 의식과 우리 내면의 논쟁이다.
눈물과 슬픔, 낙담과 환멸은 우리의 비밀이다.
우리들 마음에 있는 진실된 감정은
설사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쓸지라도
그 전부를 전달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보물은 아무리
친밀한 사이일지라도 결코 보여줄 수 없다.
또 우리가 아무리 애써 찾고 궁구(窮究)
할지라도 그 일부분만 의식 속에 투영될 뿐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과거가
신에 의해 수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란 우리에게 늘 영원한 손짓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단자(單子)는
타인의 단자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중심은 여전히 감춰져 있다.
우리는 늘 외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무의식의 중심에 있다.
마치 태양 한가운데에 흑점이 있듯
우리의 실제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적 인간에 대한 나의 이론은
내면을 구성하는 어둠, 계시,
잠재적인 심연, 무한한 미래,
불분명한 자아, 순수한 주관 등
객관화되지 않는 속성들을 통해 인간의
순수를 감지해 낸다는 것이다.
어둠에 둘러싸인 무의식은
진정한 암흑이 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비록 숙명이나 죽음에 가로막힐지라도 그것은
삶과 빛과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초석이 된다.
그것은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인간의 저항이며 활동의 정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신은 인간에게 패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승리를 통해
신은 진정한 희열을 고대하고 있다.
"1856년 10월 27일(35세)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
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1821년 9월 27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스위스인이다.
11세 때 어머니를 잃고, 2년 후에 다시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숙부 밑에서 자랐다.
제네바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유학한 후 모교로 돌아와 철학을 강의했다.
일찍이 시인으로 데뷔해
시집 <사색에 잠기다>를 펴냈고,
저서 <스탈 부인>을 남긴 평론가였지만,
그는 평생 무명이었다.
<아미엘의 일기>에는
고독에 맞서는 개인의
치열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과 만나기를 꺼렸다.
그의 일기는 구원과 심판이라는
기독교적 주제에 비중을 두면서도
19세기 중·후반의 풍속을 정밀하게 관찰해
어엿한‘작품’으로 인정 받았다.
1847년에 시작되어 1881년 4월 29일,
아미엘은 마지막 일기를 쓰고 펜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5월 11일, 60년 인생의 일기장마저 덮었다.
무려 1만7,00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일기는
사후에 편집되어 <아미엘의 일기>로 출판 되었다.
이 책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인간과 생명,
윤리와 도덕에 대한 존엄성이 퇴색하던
혼란기의 유럽에 큰 반향과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찬사가 이어졌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 책을 읽고 아우렐리우스나
파스칼에 견줄 만한 문학이라고 평했다.
그의 일기는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쓴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다.
일기에서 그는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의문,
사상과 행복, 고독과 비애 등을 적으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이 일기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독자에게 큰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이유다.
풀잎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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