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휴
자신을 창조하는 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 스님의 <잠언집> 중에서 "
참된 앎
경전이나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하고 메마르다.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서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
체험한 것이여야 한다.
다른 무엇을 거쳐 아는 것은
기억이지 앎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안 것을
내가 긁어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법정 스님의 어록 중에서 "
풀잎이 좋아하는 어록 중에서 담아 보았지 싶다.
몸이 많이 아파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만 있었던
마음과 몸의 아픈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미소년처럼 해맑은 풍경이 담긴 영상이 넘~ 좋아서 사진으로 담아 보았지 싶다.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털어낸 맑은 기운이 흐르는 영상의 모습처럼 늘 여여하시길.
사색 하나
가끔은 나 자신 스스로 거룩한 시간에 앉아 있을 때가 있지 싶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연금술사라는 책 한 권의 내용을
담아서 김창옥 교수님의 훌륭한 강연 내용이 담긴 영상을 하나하나
나의 공간에 채워나갈 때 의미를 짓고 나아가는 기록의 여정이
고스란히 나의 내면에서 어떤 바탕이 되어갈 때 그 모든 시간이 갖는
과정 속에서 빛을 찾는 여정이라면 그 모든 말씀은 어떤 빛을
지닐 수 있도록 바탕의 확장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마치 다양한 법문 공부를 하면서 접할 수 있었던 범위처럼
몸의 실상(속제)과 광명의 실상(진제)으로
반고반락이라는 3차원 존재라는 삶 속에서
탐,진,치,(삼독)을 계,정,혜,(삼학)으로
카르마(업생)을 다르마(원생)으로
상대계를 살면서 절대계를 호흡하라는 빛(광명)의 세계가 있다면
이처럼 모든 것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이치에서
스스로의 자리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면 우리 안에 좋은 씨앗에 물을 줄 수 있도록
바탕이 부족하면 빛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속제의 범위를 이길 수 있는
진제의 범위에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모든 강연의 핵심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존재라는 범위에서
저마다 가슴에 실려갈 수 있는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지닐 수 있는 의미
모든 강연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영상과의 만남이었지 싶다.
모든 범위에서 명확한 명분이 있을 때
나 자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여력을 지닐 수가 있지 싶다.
산책하면서 침묵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내 안에 충만함이 머물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 머물 수 있는
감사라는 토대를 짓고 내 안에 지니고 싶은 여정이지 싶다.
2020.2.11.풀잎.
사색의 시간을 위한 뉴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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