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미학(休) ㅡ 내면의 일기

사유 - 자각의 기쁨/마음의 스냅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 하청호

풀.잎. 2024. 9. 10. 21:21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 하청호

 

비오는 날,

연잎에 빗물이 고이면

가질 수 없을 만큼

빗물이 고이면

 

고개 살짝 숙여

또르르 또르르

빗물을 흘려 보내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가질 만큼만 담는 것을

 

하청호 동시집

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 중에서

 

 

 

 

자연은

“가질 만큼만 담는”

절제와 조화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시인들은 늘 이 아름다움에서

생활의 깊은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연잎에

가질 수 없을 만큼

빗물이 고이면”

“고개 살짝 숙여

또르르” 흘려보내는 것은

더 많은 빗물을 받기 위한

절제된 자연의 편안함이다.

 

시적화자는 빗물을 흘려 보내는

연잎에 조용히 감응을 받고 있다.

하청호 시인은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이라는 자연의 진리를

자본의 욕망 앞에 내세워 서정적 자아와

자연이 동화되어 함께 만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나’(인간의 욕망)라는

작은 그릇을 버리고 나면

‘연못’(자연)이라는  더 큰 그릇이 있다는

자기 성찰로 자연적 안정을 찾고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얼룩진 골목길(현실)에는

“간판이 가로막”고, 예쁜 것만을 찾는

“사람의 지혜”가 그것을 가로 막는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동심은

늘 절제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현실이 갑갑하면

갑갑할수록 되살아나는 것이다.

욕망의 끝에서 되돌아오는 곳도 이 동심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본과 문명의 속도 속에서

인간적인 삶의 ‘안정’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의 미’를 향한

서정적 동일성을 찾으려 애를 쓴다.

 

이러한 조화의 미와

욕망의 억제를 향한 동심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 대한

서정적 저항이며,

한편으로는 문명의 속도에 대한

거부와 통합의 시학이다.

 

" 월간문학 2006. 12월호 "

 

 

풀잎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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