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2010. 3. 26. 01:19

十六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귀신지위덕, 기성의호!)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시지이불견, 청지이불문, 체물이불가유)

 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사천하지인, 제명성복, 이승제사)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양양호여재기상, 여재기좌우)

 詩曰 —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신지격사, 불가도사, 신가사사)

 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 (부미지현, 성지불가엄, 여차부!)

 [귀신의 신령스러운 덕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근본 몸이니 만물에 깃들지 않음이 없구나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엄숙히 하도록 하고 복장을 정숙히 하게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며 세상에 가득하여 위에 있는 듯하고 좌우에 있는 듯하구나.

시에 — (신이 찾아옴 헤아려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꺼려 할 수 있겠는가?)

미세함이 뚜렷이 나타나고, 성실함을 가리울 수 없음이 이와 같은 이치 이다.]

 

12장에 군자의 도는 밝으면서 은미하다 하였는데

14장부터 이 곳 16장까지 작은 것 중 빛나는 것(밝은 것)을 말 한 것이고

17장부터 3장은 큰 것 중에 빛나는 것(밝은 것)을 말함이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귀신 얘기를 공자님께서 하시니 좀 당황스러워 이 글을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 하는 분도 있을 거고 귀신을 모시는 무리들은 봐라 신의 존재를 공자님도 인정하시지 않느냐 하며

자기신념 강화에 열을 올리는 분께서도 계실 것이다.

 

미세한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귀신이다.

귀신에 대해서는 앞에서 한번 살펴보았으니 여기서는 귀신 중에

신(God) 즉 하나님 같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자.

詩에 신의 찾아옴 알 수 없다 했는데 보려 해도 들으려 해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

당연히 신의 오고 감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위에도 있고 좌우에도 있는 것 같다 했으니 신은 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온 우주에 충만 하다는 뜻이다.

 

교인들은 주일마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복장을 갖추어 예배 드리러 가고

불자들은 때에 맞추어 목욕제계하고 불공 드리러 절에 가고

우리들은 기일에 맞추어 정갈한 마음으로 조상신께 제사 지내고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요 인간다운모습이다.

이 모두는 귀신의 신령스런 덕이니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교만을 잘 조절하는 이치이고

피곤하고 기댈 곳 없는 영혼들의 안식처다.

 

문제는 무엇인가?

神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고 바라는 그런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물이나 사람처럼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에 體物而不可遺 (만물의 근본 몸이니 만물에 깃들지 않음이 없구나)라

하였으니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이 함께하고”, “불성이 함께하고” 와 같은 말을 함은 두 실체가 한

몸에 있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귀신들린 것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경에 나오는 글이다

질문자: 신의 존재를 믿는 자는 어떠합니까?

부처님: 잘 듣고 잘 생각해보고 대답하라

어떤 한 총각이 있어 말하기를

“나는 이웃마을 처자를 사랑하네. 그래서 나는 그녀와 반드시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것이네.”

그의 친구가 묻기를

“ 그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가? 뚱뚱한가 날씬한가?”

총각이 대답하였다.

“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어 그 것은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를 사모한다네”

다시 친구가 물었다

“ 그러면 그 여자의 마음씨는 어떠한가?”

총각이 대답했다

“ 아직 들은 바가 없어서 잘 모르네 그러나 나는 믿는다네 그녀가 있다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네”

다시 친구가 물었다.

“그러면 그녀의 성씨는 무엇이며 어떤 집안의 몇째인가?”

총각이 대답했다

“그 것도 아직 모르네 그러나 난 그녀와 반드시 결혼할 것이네 그녀는 틀림없이 있음을 내가 믿는 다네”

이러한 경우에 이 사람은 어떠한가?

질문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듣도 보도 못하고 근본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고

믿으니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부처님: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으니라.

(기억에 의존하여 옮긴 것이라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함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사람은 자유로운 정신의 존재이고 만법은 마음(中)의 발현이다.

 

내 믿음만 옳다 하면 어긋남이요

다양성 인정함은 바로 섬이다.

신념의 종류가 문제 아니며

멋대로 이해함이 큰 문제네

주님 믿고 사람 되면 하늘나라요

부처 믿고 아만 떨면 아귀 됨이다.  

 

자신 밖에 모르면 성령 떠나고

남도 알고 행하면 불성 옴이며

군자다운 행을 하면 군자가 되고

소인다운 행을 하면 소인 됨이니

신의 존재 함 이런 이치라

신의 덕 공자가 찬양 함이네.

 

cf)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믿습니까?

   아니요 못 믿겠습니다.

 

 이왕지사 믿음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증명할 수 없는 존재를 믿는 것이 믿음일까?

 걷는 것은 믿음일까?

 자는 것은 믿음일까?

 밥 먹는 것은 믿음일까?

 공부하는 것은 믿음일까?

 대화 함은 믿음 일까?

 

걷는 것은 믿음이다.

내가 건너는 다리가 무너지지 않음을 믿기에

또 걷다가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 것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당당히 걷는 것이다.

누가 성수대교가 무너지리라 의심하였겠는가?

믿음이 있기에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난 것이요

믿음이 있기에 무너지는 다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래도 오늘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또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이니

믿음이 없다면 누구도 건너지도 걷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는 것은 믿음이다.

내일도 아무 탈없이 일어날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밤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이웃집 사람이 자다가 죽었는데 그도 별일 없을 것으로 믿고 자다 죽은 것이다.

만약에 잠든 후 죽을 줄 알았었다면

그는 결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니 자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믿음이다.

오늘 먹은 피조개 아무 탈 없이 소화 될 것을 믿기에

나의 튼튼한 장을 믿기에

주저 없이 맛있게 먹는 것이다.

결국 믿고 먹다가 죽는 자도 있는 것이니

믿음 없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부함도 믿음이다.

장래에 성공의 밑거름이라 믿기에

오늘도 우리는 자식들을 들들 복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 잘 한자가 성공한단 보장 없기에

들들 복아 공부 잘해도 마음 한 켠은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굳건히 믿으니 공부하면 잘 된다고 믿는 것이다.

 

대화함은 믿음이다.

내가 말 한 것 그가 잘 알아들을 거라 믿기에

말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말한 것을 상대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수시로 생기는 법

그래도 잘 알아 들으리란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나의 말을 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 이세상에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믿음 없이 한시도 살지 못하는 것인데

다시 또 왜 사람들은 믿습니까? 믿습니까? 하는 것이며 도대체 무엇을 믿어달라 강요하는 것인가

 

이치가 이러 하거늘

오늘도 자신은 믿음이 부족하다 고민 하는 자

남편이 바람 필까 잠 못 드는 자

자식이 담배 필까 걱정하는 자

스스로 노심초사 지옥에 산다.

 

이치가 이러하니 근심하지 말고

매사에 중용을 공부하고 실천하여서

남편이 절대로 바람피지 못하게 하고

자식이 절대로 비행에 빠지지 않게 하고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믿음과 함께 행복하여야 하겠다.

 

마태복음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예수)

믿음은 사람을 살수 있게 하는 이치요

산을 옮겨 바다 메워 농토 만듦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예수님 거짓을 말한 적 없음이다.

우리 인간들의 믿음이 트럭을 만들고 굴삭기를 만들고 바다도 메우는 공법도 알아 낸 것이다.

산을 깎아 바다 메우는 것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인데 예수님의 말씀이 그 뜻이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진리는 항상 당연한 것이요 성인이 거짓을 말 할 리 없다. 

지금은 우리가 물 속에서 살 수 없지만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는 바다 속에 도시 짖고

살 날도 올 것이니 이루어진 다음에야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니

컬럼버스 달걀과 같은 것이지 희한한 신통력 찾음은 어리석음 일뿐이다.

 

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

귀신의 이치가 이러하듯이 미세함은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분명해지는 것이요

성실함은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만사를 바로 하는 근본이다.